우리동네성북

우리 동네 성북의
통일신라시대는 어땠을까요?

한강유역을 둘러싼 삼국간의 공방전은 660년 백제가 668년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게 멸망되고 676년 신라가 당나라를 축출함으로써 한반도에는 신라의 통일국가가 출현하였다. 신라는 새로이 갖게 된 옛 백제땅과 고구려 양토의 일부를 포함하여 신문왕 5년에 새로운 지방행정조직을 편성하였는데, 신라 본토에 3주 등 전국을 9주로 나누고 5소경을 설치하였다. 이때 성북구지역을 포함한 서울지방은 한산주에 편입되었다.

한산주는 그 구치인 광주를 중심으로 경기도, 충청북도, 황해도에 걸치는 광범위한 지역을 관할구역으로 하였다. 그후 경덕왕 16년에 한산주를 한주로 개칭하였고, 지금의 서울지방에는 한양군을 설치하여 태수와 소수의 지방장관을 두었다. 그리고 한양군의 영현으로 황양과 우왕현을 두었으니 이때 성북구지역을 포함한 서울, 양주군, 고양군 일대가 한양군에 속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서울지방의 별칭인 한양이란 이름이 바로 신라의 한양군에서 유래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백제의 도읍지였던 오늘날 서울지방인 북한산성과 한성 일대는 고구려가 점령했을 때는 남별도로서 주요 군사기지였으며, 신라가 차지하면서는 대고구려 전쟁의 요충이 되었다. 그러나 신라의 영역이 대동강 유역에까지 확대됨에 따라 한양군은 변방적 성격을 벗어났으며, 선덕왕 3년 신라 서북방면인 황해도 일대에 패강진이라는 막강한 군사기지가 설치됨에 따라 한양군은 이제 명실공히 군사기지에서 민사행정 지역으로 편제되었다. 그리하여 한양군은 경덕왕 16년 이후 신라 하대까지 한주의 관할구역으로 지속되었으며, 고려 태조 23년 양주로 개칭되기 까지 그 군호와 치소는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성북지역에는 고려시대 남경의 영화를 말해주는 듯 보문사 미아사 경국사 등 고려시대로부터 전승된 유명사찰이 건재하고 있다.

담당자 정보

  • 정보제공부서 문화체육과
  • 전화번호02-2241-2652
  • 팩스번호02-2241-6536
  • 최종수정일2024.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