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성북
조선시대는 어땠을까요?
조선시대에 들어 한양천도가 실현되자 성북지역은 수도 한성부의 성저십리 지역으로 편제되었다.
약 18km의 도성이 수축됨과 더불어 4대문 가운데 하나인 숙청문 즉, 북대문이 건립됨으로써 도성의 북쪽지역이라는 지리적 위치에 그 지명을 얻게 되었다.
따라서 성북구지역은 서울 한성부의 정도와 도성수축 및 숙청문 혜화문 등의 건립과 더불어 일련의 역사성을 가진다.
또한 서울 지방의 보장지지로서 쌓은 북한산성 역시 성북구의 북쪽 경계를 이루어 북한한성의 축성 또한 성북구 역사의 상징적인 일면을 장식하게 되었다.
성북구지역은 남경의 동북쪽 인근지역이었으며 당시 남경의 크기는 지금의 서울도심지역을 합한 것 만큼의 큰 규모였다.
그리고 남경은 유수부 직할로 3군 6현의 속현과 영현관할지로 1부 2주군 1현이 있어 오늘날 경기도 서북부 절반을 관할구역으로 하였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사상이 발달하여 누원점의 도매가 활약하는 등 상업활동의 중심지역으로 성장하기도 하였으며 동활인서 등 빈민구제기관이 설치되어 운영되기도 하였다.
한편 삼선평에서는 군사의 조련이 실시되었고 성곽수비를 위한 어영청의 북창이 이곳에 있어 한성부의 안보 치안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또 정릉 의릉 등이 위치하여 왕실의 안장지로서의 기능도 하였으며, 선잠단, 영성단이 있고 북둔도화의 명승지로서 시민의 휴식처가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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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2024.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