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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시대는 어땠을까요?

신라시대 김헌창부자의 반란은 지방세력 출현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며, 특히 9세기 말기 진성여왕 때에 이르러 정국은 더욱 혼란에 빠져 급기야 후삼국시대를 맞게 된다. 892년 견훤이 완산에 웅거하여 후백제라 칭하였고, 북원·명주를 거쳐 철원 등 인군 70여 군현을 공략한 궁예는 패서지방 세력의 항복과 896년 개성의 왕건부자가 귀부해옴으로써 그 세력을 더욱 강화하였다.

그리하여 898년 궁예의 휘하인 왕건이 양주와 견주지역을 공략하고 패서도와 한주 관할 30여성을 장악하니 지금의 서울지역은 궁예의 세력권에 들게 되었다. 이어 901년 궁예는 왕을 칭하고 국호를 고구려라 하였다가 마진·태봉 등으로 고쳤다.

그러다가 918년 궁예가 추방되고 왕건이 국왕에 추대되어 고려왕조를 개창함에 따라 한양군은 고려에 편입되었으며, 태조 23년 전국의 행정구역을 재편성하고 군현호를 개칭함에 따라 한양군은 양주로, 한주는 광주로 개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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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2024.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