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사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 말까지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최고급 요청의 하나였던 대원각 자리에 세워졌으며 성북동 깊숙한 산자락의 대원각 주인이었던 고(故)김영한 여사가 7천여 평 대지와 건물 40여 동의 부동산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해 길상사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현재는 불교체험, 템플스테이 등의 프로그램과 다양한 행사까지 개최하는 등 도심 속 문화공간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출처 - 성북100경
2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구본원
천주교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구 본원은 1953년 설립된 한국 카톨릭 최초의 내국인 수도자를 위한 남자 수도회인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본원 건물로, 방유룡 신부의 설계로 1953년 건립되었으며 한국인 신부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역사적, 종교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전형적인 라틴십자가 평면으로 구성한 이 건축물은 후진 평면을 일반 성당의 반원형 대신 타원형으로 설계되었으며. 또 제단 상부 돔 역시 반원형이 아닌 타원형 반구로 조성하는 등 다른 성당과는 구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면적은 155㎡이며 이러한 아름다움과 특이점을 인정받아 2015년 12월 16일 대한민국 국가등록 문화재 제655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성북문화원
3이태준가옥(수연산방)
상허 이태준 가옥은 <문장강화>와 <무서록>을 쓴 상허 이태준의 고택을 손녀가 찻집으로 낸 곳으로써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난 듯 온전히 쉴 수 있는 여유가 묻어나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자리는 사랑방의 바깥 쪽자리인데 원래 방 높이보다 한단 정도 높게 되어 있고 문에는 한지 대신 유리를 끼워 밖이 잘 보이게 되어있어 여기 앉아 있으면 담장 너머로 북악산 자락이 건너보인다. 전통 차와 함께 옛 선인들의 정취를 느끼며 조용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출처 - 성북100경
4심우장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명 이었던 독립운동가이자, ‘님의 침묵’을 지은 시인이며, ‘조선불교유신론’에서 불교개혁을 외치기도 했던 만해 한용운 선생이 55세가 되던 1933년부터 1944년 6월 입적할 때까지 살던 집이다. 그의 손때가 묻은 건물 안을 들어가 볼 수도 있고,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도 만나볼 수 있는 심우장은 한용운 선생의 자취를 느끼고 그의 시를 읽으며 치열했던 그의 독립운동과 삶을 되새겨 보는 귀한 경험이 될 수 있는 장소이다.
성북동 코스
(집결지)
구 본원
(수연산방)
출발
1길상사
길상사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 말까지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최고급 요청의 하나였던 대원각 자리에 세워졌으며 성북동 깊숙한 산자락의 대원각 주인이었던 고(故)김영한 여사가 7천여 평 대지와 건물 40여 동의 부동산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해 길상사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현재는 불교체험, 템플스테이 등의 프로그램과 다양한 행사까지 개최하는 등 도심 속 문화공간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출처 - 성북100경
2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구본원
천주교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구 본원은 1953년 설립된 한국 카톨릭 최초의 내국인 수도자를 위한 남자 수도회인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본원 건물로, 방유룡 신부의 설계로 1953년 건립되었으며 한국인 신부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역사적, 종교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전형적인 라틴십자가 평면으로 구성한 이 건축물은 후진 평면을 일반 성당의 반원형 대신 타원형으로 설계되었으며. 또 제단 상부 돔 역시 반원형이 아닌 타원형 반구로 조성하는 등 다른 성당과는 구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면적은 155㎡이며 이러한 아름다움과 특이점을 인정받아 2015년 12월 16일 대한민국 국가등록 문화재 제655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성북문화원
3이태준가옥(수연산방)
상허 이태준 가옥은 <문장강화>와 <무서록>을 쓴 상허 이태준의 고택을 손녀가 찻집으로 낸 곳으로써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난 듯 온전히 쉴 수 있는 여유가 묻어나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자리는 사랑방의 바깥 쪽자리인데 원래 방 높이보다 한단 정도 높게 되어 있고 문에는 한지 대신 유리를 끼워 밖이 잘 보이게 되어있어 여기 앉아 있으면 담장 너머로 북악산 자락이 건너보인다. 전통 차와 함께 옛 선인들의 정취를 느끼며 조용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출처 - 성북100경
4심우장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명 이었던 독립운동가이자, ‘님의 침묵’을 지은 시인이며, ‘조선불교유신론’에서 불교개혁을 외치기도 했던 만해 한용운 선생이 55세가 되던 1933년부터 1944년 6월 입적할 때까지 살던 집이다. 그의 손때가 묻은 건물 안을 들어가 볼 수도 있고,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도 만나볼 수 있는 심우장은 한용운 선생의 자취를 느끼고 그의 시를 읽으며 치열했던 그의 독립운동과 삶을 되새겨 보는 귀한 경험이 될 수 있는 장소이다.
출처 - 성북문화원
도착